임야에 타인의 묘지가 있을 때
 
허모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중개사의 소개로 개발 예정지 주변의 임야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허씨는 임야 매수전 중개사와 함께 임야를 둘러보았으나 땅이 넓어 일일이 다 돌아보지는 못하였고 대략적으로 살펴본 후 임야의 소유주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끝냈습니다. 허씨는 이후 위 임야를 분할하여 팔 요량으로 측량을 하던 와중에 위 임야의 일부에 묘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묘지 수기가 다른 지번과의 경계지점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허씨는 중개사를 통하여 전 소유자에게 묘지의 이장을 요구하자, 전 소유자는 묘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중개사에게 말해줬고 그 중 일부는 자기도 모르는 묘지이고 자신의 조상묘도 이장할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허씨는 새로 구입한 위 임야 위에 있는 묘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우리의 생활에서 묘지는 조상의 봉분이 있고 제사를 봉행하는 등 그 목적이 일반 물건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묘지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토지의 매매과정에서 묘지의 처리문제는 항상 분쟁의 소지가 있습니다. 한편, 우리 판례도 설사 타인의 토지위에 있는 묘지라도 묘지연고자가 해당 묘지의 사용, 관리를 위하여 그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일정한 요건 하에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분묘기지권’이라 합니다. 관습법적으로 인정되는 법정지상권의 일종입니다.

이러한 분묘기지권은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토지 소유자의 승낙없이 분묘를 설치한 후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점유하여 시효취득한 경우,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그 분묘에 대한 이전 약정없이 토지를 처분한 경우에 인정됩니다.

분묘기지권은 묘지의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경우에 인정되며, 이러한 묘지의 특성상 별도의 등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평장 또는 암장과 같이 겉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실제 묘지라 하더라도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은 토지소유자와 묘지 권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있으면 그에 따라야 하나, 그러한 약정이 없는 경우 분묘기지권 권리자가 묘지의 사용, 관리, 제사 봉행 등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지속되는 한 계속하여 위 권리를 갖게 됩니다.

다만, 2001. 1. 13.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토지소유자의 승낙없이 설치된 묘지에 대해서는 토지소유자에 대하여 묘지 보존 관리를 위한 토지 사용권이나 그 밖의 분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001. 1. 13. 이전에 설치된 묘지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분묘기지권이 인정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없이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을 주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여, 무연고 묘지에 대해서는 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시장, 군수,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분묘 개장에 관한 내용을 3개월 이상 일간신문에 공고한 후 무연고 묘지를 개장하여 처리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례에서, 허씨는 전 토지소유자가 임야 매수과정에서 자신의 조상묘를 이장하기로 약정하였다거나 분묘기지권을 포기하기로 하였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는 한 전 토지소유자를 상대로 분묘이장이나 철거를 청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전 토지소유자가 위에서 설명한 분묘기지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 토지소유자의 조상묘가 2001. 1. 13. 이후에 설치되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묘지 이장이나 철거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허씨의 임야상에 남아 있는 무연고 묘지는 시장, 군수, 구청자의 허가를 받아 그 절차에 따라 개장하여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변호사 이인상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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